네트워크 엔지니어의 진로(2)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적는 공간입니다.
네트워크 엔지니어로 일하시는 분들 또한 댓글에 아래 내용에 관련된 생각을 적어주시면 네트워크 엔지니어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서 네트워크 엔지니어의 진로(1)에서는 네트워크 직군에 대해 주로 다루었기에 기술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네트워크 기업의 기업규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기업규모는 넓게 중소기업(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나누어 잡고 이야기를 진행할 예정이고,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그리고 대기업에서의 직원 대우가 얼마나 다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업별로 급여와 복지, 근무환경 등 겪은 이야기를 많이 소개하게 될 듯합니다.
중소기업(소기업)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네트워크 엔지니어라면 대부분 한 개 혹은 그 이상의 Vendor(이하 벤더)의 장비를 다루는 엔지니어로 근무하시는 분들일 겁니다. 시스코와 같은 꽤 규모가 큰 벤더라면 파트너사 엔지니어로서 근무할 것이고 중소 규모의 벤더라면 총판 엔지니어로서 근무할 수도 있습니다. 간혹 중소 규모(50명 이하)의 기업에서 채용공고를 내며 해당 기업이 특정 벤더의 총판임을 공개 홍보한다면 높은 확률로 규모가 작은 벤더의 총판이니 감안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네트워크 업계에 종사하는 필드 엔지니어는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규모의 벤더 장비를 다루는 파트너사 엔지니어에서부터 작은 규모의 벤더 장비를 총판 혹은 파트너사 엔지니어로 근무하지요. 영업사원이 고객사와 네트워크 장비 구축 및 유지보수 계약을 맺으면 필드 엔지니어가 투입되어 네트워크 장비를 구축하고 유지보수 및 장애처리를 맡게 됩니다. 한 개의 고객사에 있어서 영업사원과 한 그룹을 이루게 되는 것이죠.(물론 대형 고객사의 경우, 여러 엔지니어와 영업사원이 한 팀을 이루겠죠) 그러므로 영업사원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필드 엔지니어로 일하다 보면 고객사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줘야 할 때가 종종 있고 이를 영업사원을 통해 해결하거나 조정을 하게 됩니다. 또 영업사원이 무리한 요구(유지보수 계약을 맺지 않은 회사에 대한 기술 지원 등)를 하게 될 때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줘야 할 경우도 생기고 엔지니어가 실수를 했을 때 영업사원이 이를 감당하게 되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소위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므로 적절히 처신할 필요가 있고, 이는 엔지니어로서 경험을 쌓아가며 융통성 있게 행동하는 것이 좋겠죠. 아무것도 모르는 초년차 엔지니어 분들은 영업사원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 초년생 때 20kg 장비 2대를 사당에서 김포공항까지 지하철을 타고 옮긴 적이 있습니다. 영업사원이 일정을 펑크 냈었거든요. 그 영업사원 이름은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네트워크 인프라 사업(Network Integration, NI 기업)을 하는 중소기업 또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신입사원에게 높은 급여를 제공하는 중소기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야간작업이 잦은 네트워크 엔지니어 특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초과근무 수당을 법에 맞게 지급하는 회사는 썩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이는 중견기업과 대기업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또 열심히 일하는 것에 비해 연봉 상승률이 낮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로 "경력직을 내보내고 신입으로 채워 비용을 절감한다"라는 말이 NI기업에도 예외는 아닐 거란 생각이 종종 들곤 합니다. 결국 대기업의 의뢰를 받아 네트워크 장비를 설치하고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하여 비용을 받게 되는데, 대기업 입장에서는 이는 비용이니 최대한 절감하려 할 것이고 이는 결국 NI 중소기업의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지게 될 테니 이러한 악순환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을 직접적인 이유라고 보기엔 중소기업에서 영업이익 극대화를 위해 인건비를 가장 먼저 절감하려 하는 경향도 주된 이유를 차지하겠죠. 이에 대해선 수많은 의견이 존재할 겁니다.
중견기업
네트워크 업계에서 중견기업이라 함은 흔히 "시스코 골파"라는 명칭으로 통용되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SKT, KT, LG U+와 같은 대형 통신사뿐만 아니라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의 네트워크 운영과 장비 납품을 책임지는 회사들이 대다수를 차지하지요.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스코 장비를 주력으로 납품하는 회사들이 Cisco 社(이하 시스코)의 "골드 파트너" 자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흔히들 시스코 골파라고 부릅니다. 이 회사들은 단순 시스코(주니퍼, 아리스타 등) 장비를 주력으로 납품하는 것 이외에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네트워크 장비를 기타 중소기업으로부터 구매 및 납품, 유지보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회사들은 "마도사(일본어 마도구찌사)"라고 부르죠. 마도사는 고객사가 원하는 모든 네트워크 장비를 발주받은 후, 이를 납품 가능한 회사에 재의뢰하여 발주받고 해당 회사에게서 엔지니어의 기술지원과 유지보수까지 모두 지원받습니다. 그리고 마도사에게 장비를 납품하고 엔지니어를 보내 기술지원과 유지보수를 맡는 회사는 마도사가 고객사가 되는 것이죠. 중견기업에 해당하는 NI 기업에 들어가면 대형고객사를 상대하며 다양한 장비를 제공하는 또 다른 NI 기업과 유지 보수 계약을 맺고 기술 지원을 받는 사례가 많습니다. 고객을 상대하며 협력사를 관리하는 것이죠.
중견기업에 소속된 네트워크 엔지니어라고 해서 중소기업의 네트워크 엔지니어와 딱히 다를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대형 고객사에 기술지원 및 유지보수를 수행하거나 고객사에 상주하며 네트워크 운영을 맡게 되지요. 규모가 어중간한 고객사의 유지보수를 맡는 경우에는 1인 상주를 하기도 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본사에 기술지원을 요청하여 필요한 작업을 수행합니다. 백본급 장비(L2, L3 스위치 및 라우터)를 대형 고객사에(통신사 등) 납품하는 회사는 대규모 네트워크를 경험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게 아닌 고객사에 상주하는 엔지니어는 대규모 네트워크에서 다양한 장비를 접할 기회가 있습니다. 다만 앞서 네트워크 엔지니어의 진로(1)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주 운영을 하는 엔지니어는 기술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급여와 복지에 있어서 중소기업보다 조금 혹은 꽤 나은 편입니다. 연봉 같은 경우에도 영세한 소기업에 비해 많이 주는 편이고 나름 복지도 신경 쓰려고 합니다. 주식시장에 상장한 회사 중 입사하고 나면 주식을 나누어 주는 곳도 있죠. 다양한 복지제도를 운영하며 채용 공고에 이를 기재하여 인력을 충원하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포괄임금제를 여전히 운영하는 곳도 많고 야간에 작업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이직 기회를 잡게 되는데 보통 대형 고객사를 직접 상대하며 기술지원을 하는 만큼 긴 시간 재직하면 자신이 기술지원한 고객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경력과 직급을 모두 인정받고 이직한 사례는 드문 듯합니다. 그래도 고객사로 이직하게 되면 대우가 더 나아지는 건 맞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대기업에 속하는 NI 기업들은 대부분 한 그룹의 계열사에 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 SDS, LG CNS, 신세계 I&C, 포스코 ICT 등 한 그룹의 계열사로 소속되며 대기업 그룹사의 IT 서비스 관련 업무를 관장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산업 구조의 특성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제조업 중심국가죠. 제조업을 가지고 먹고사는 기업이 IT 인프라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순 없기에 커진 기업 규모에 맞게 IT 계열사를 별도로 두고 그룹사의 모든 IT 관련 업무를 맡기는 겁니다. 제조업이 아닌 유통업, 금융업 등 다양한 대기업도 IT 서비스를 반드시 제공합니다. 그렇기에 이름만 들으면 다 알 수 있는 정도의 회사들은 IT 계열사를 운영하죠. IT 서비스를 주력하는 기업들, 흔히들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를 필두로 한 IT 서비스 사업이 주력사업인 회사들은 주요 서비스의 개발과 유통, 유지보수는 본사에서 직접 하지만 인프라 관리, 장비 납품/설치 등의 별도 계열사를 두고 대신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비 IT 대기업이 IT 계열사를 두고 모든 IT 서비스 사업을 맡기는 것과는 다르죠. 주력 사업이 IT 서비스이기 때문입니다.
IT 서비스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가 아닌가는 꽤 중요한 사실입니다. 기업은 사업을 통해 매출을 올리고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는 집단입니다. 그렇기에 매출을 내는 사업과 부서를 중시할 수밖에 없죠. 그러므로 IT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IT 서비스 회사들은 자신의 회사에 속한 IT 관련 인력(개발자, 엔지니어, 기획자 등)을 중시하고 대우를 높게 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불과 1~2년 전에 벌어졌던 개발자 모시기 열풍도 그의 일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IT 서비스 사업이 주력이 아닌 보조적 성격을 띠는 대기업의 IT 계열사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기업의 매출이 IT 서비스가 다른 곳에서 발생하므로 IT 계열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비용을 지출하는 돈 먹는 하마가 됩니다. 또 IT 계열사의 기술 향상이 그룹사의 매출 증대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고 오히려 IT 서비스 장애에 매우 민감해집니다. IT 서비스가 그룹사의 매출을 올리는데 보조적인 역할을 하지만 없으면 안 되는 역할이다 보니 장애가 나면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장애가 발생하느냐 안 하느냐가 개인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장애를 일으킨 부서와 개인은 혹독한 대가를 면치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대기업의 IT 계열사에 소속된 네트워크 관리자로서 기술력 향상보다는 안정적인 운영에 더더욱 주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과거에 필드엔지니어나 네트워크 운영자로 경험을 쌓았다면 기술력을 갖춘 상태로 안정적인 네트워크 운영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별다른 경험 없이 신입사원으로 네트워크 관리자 직무를 시작했다면 많은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은 있습니다. "필요성은 있다"라고 언급한 이유는 직접적인 운영보다는 문서 작업(보고 등)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 탓에 기술 공부가 업무 역량 향상에 미치는 정도가 낮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물론 이 또한 전체에 해당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특히 IT 서비스 사업을 주력하는 회사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IT 서비스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면 회사 입장에선 개개인의 기술력 향상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