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제도를 설정하려는 사용자는 계속근로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퇴직금으로 퇴직 근로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
- 출처 :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 1항 -
퇴직금은 사용자(이하 회사)가 근로자에게 퇴직 시 지급하는 급여로 계속근로 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분 이상의 평균 임금(기타 수당 및 상여 수당 포함)에 근속연수를 곱해 근로자에게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설정된 근로자의 돈입니다. 이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약칭 퇴직급여법)에 명시된 사항으로 회사는 이를 근로자에게 반드시 지급하여야 합니다. 근로자가 받는 급여가 클수록, 재직 기간이 오래될수록 더 많은 퇴직금을 회사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지요. 퇴직연금이 도입된 2005년 이전에는 대부분의 회사가 퇴직금을 근로자에게 지급했습니다. 그러다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기업이 점차 늘어나고 급기야 2022년 전 사업자의 퇴직연금 가입이 의무화되며 퇴직금을 지급하는 기업은 사라졌습니다. 여기에 퇴직금 100% 지급이 강제되지 않아 말이 많았던 5인 미만 기업(2013년 이전) 또한 퇴직연금 가입이 의무화되었습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2013년에 퇴직금 지급이 의무화되지 않은 사업장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2022년이 되어서야 전 사업자의 퇴직연금 가입이 의무화되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제라도 전 사업장의 퇴직연금 가입이 법률로 의무화되었다는 점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퇴직금이 아닌 퇴직연금을 도입해야 하는 것일까요? 퇴직연금을 도입함으로써 근로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 2가지 사실을 중점으로 퇴직연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퇴직연금이란?
퇴직연금 제도는 근로자들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근로자 재직 기간 중 회사가 근로자의 퇴직 급여를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이 적립금을 회사(DB) 또는 근로자(DC)가 운용하다가 55세 이후에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 출처 : 고용노동부(https://www.moel.go.kr/retirementpay.do) -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은 근로자 퇴직급여제도의 설정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 보장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 출처 :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1조 -
퇴직연금은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할 퇴직금을 회사 내에 보관하지 않고 금융기관에 적립한 뒤, 근로자가 퇴직할 시점에 일시금 혹은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하여 노후를 보장하는 방식이죠. 아래 그림은 회사가 지급한 퇴직금이 금융기관을 거쳐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과정을 설명하는데요. 퇴직연금 제도 하에서 퇴직금이 금융기관에 적립되며 어떤 과정을 거쳐 근로자에게 어떻게 지급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① 회사는 매년 근로자를 위한 부담금(퇴직금)을 금융기관에 적립합니다. 이때부터 회사에 어떠한 재정적 문제가 생기든 금융기관에 맡겨진 부담금, 다시 말해 퇴직금은 금융기관 내에서 안전히 보호됩니다. ② 회사 혹은 근로자가 부담금(퇴직금)의 운용주체가 되어 부담금(퇴직금)을 금융기관의 금융상품에 투자합니다. 이때, 부담금(퇴직금)의 투자는 운용 주체의 투자 성향에 적합한 금융상품에만 투자되며, 개별주식은 투자 대상이 될 수 없지만 펀드나 ETF, 채권에는 투자가 가능합니다. ③ 시간이 흐르며 연금 계좌에 부담금(퇴직금)이 지속적으로 쌓이며, 투자 성과가 함께 누적됩니다. ④ 근로자가 퇴직할 때가 되면,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혹은 연금으로 지급받습니다.
왜 퇴직금이 아닌 퇴직연금이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퇴직금이 아닌 퇴직연금이어야 하는 것일까요? 사실 앞서 퇴직연금 제도의 구조와 흐름을 설명하면서 퇴직연금이 퇴직금에 비해 가지는 장점이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퇴직금을 회사로부터 분리하여 보호하고, 금융상품에 투자하여 투자 성과를 쌓으며, 근로자가 퇴직할 시점이 되면 투자 성과와 함께 충분히 누적된 퇴직연금을 지급합니다. 이것이 퇴직연금이 퇴직금에 비해 가지는 장점이자 퇴직연금이 존재하는 목적이죠. 이를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퇴직금을 회사가 아닌 금융기관(제삼자)에 적립한다.
퇴직금 제도가 가지는 가장 큰 단점은 바로 퇴직금을 회사가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엄연히 근로자의 급여임에도 회사가 이를 관리합니다. 다시 말해 회사의 재정 상황에 큰 문제가 생긴다면 근로자가 퇴직금을 받지 못할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과거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해도 회사가 부도나서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아주 많았습니다. 적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간 회사를 위해 일하고 받아야 할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죠. 퇴직연금은 매해 발생하는 퇴직금을 제삼자인 금융기관에 반드시 적립하도록 함으로써 회사가 퇴직금을 마음대로 유용하거나 재정 상황에 문제가 생겨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의 첫 번째 장점입니다.
두 번째, 퇴직연금을 금융상품에 투자하여 더 키울 수 있다.
퇴직연금의 첫 번째 장점인 금융기관 적립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바로 금융상품에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매해 적립되는 퇴직금을 운용 주체(회사 혹은 근로자)의 투자 성향에 맞추어 적절한 펀드, ETF, 채권, 현금성 자산에 투자합니다. 퇴직연금에 적립된 돈은 기본 속성이 "연금"이기 때문에 위험한 상품에 투자할 수 없습니다. 개별 주식은 투자가 불가능하며 주식형 상품은 최대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금융 상품의 투자 성과(배당금 재투자, 투자 수익)가 퇴직연금에 더해져 연금의 규모가 더욱 커집니다. 퇴직연금의 두 번째 장점이자 엔지니어를 위한, 연금 제도 쉽게 이해하기에서 퇴직연금을 일찌감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퇴직금과 달리 퇴직연금은 일정 액수로 나누어 꾸준히 받을 수 있다.
과거 퇴직금 제도가 일반적이던 시절에 근로자는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나오며 거액의 퇴직금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의 수입원이 끊긴 상태에서 꽤 큰 액수의 퇴직금만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해야 했죠. 퇴직 사유가 "나이"가 대부분이었던 그 시절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고, 알바를 하려니 급여도 시원찮고 몸이 고된 일이 많았습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퇴직금을 활용해 창업을 하는 것이었죠. 주로 접근성이 높은 음식업(프랜차이즈 등)을 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이 유독 높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높은 전문성 없이 시작한 자영업은 성공할 확률이 낮아 결국 폐업을 하고 투자한 퇴직금을 모두 잃은 사례가 많습니다.
퇴직연금 제도는 퇴직한 근로자가 아무런 소득원 없이 퇴직금에 의존하여 생계를 꾸리지 않고, 일정 기간 연금으로 꾸준히 받도록 합니다.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매월 지급받기에 지속적인 소득원을 제공할 수 있고 퇴직금을 이용해 또 다른 소득원을 창출해야 하는 위험 부담을 줄여줍니다. 애초에 퇴직연금이 도입된 목적인 "은퇴 후 현금흐름"을 생각해 본다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네 번째, 이직 시 중간 정산한 퇴직금을 "보호"하여 금융상품에 투자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퇴직연금은 퇴직금과 마찬가지로 이직을 하게 된다면 중간에 퇴직금을 정산받습니다. 그러나 퇴직금과 달리 퇴직연금 제도 하에서는 회사로부터 받은 퇴직금을 즉시 지급하는 것이 아닌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개인형 퇴직연금) 계좌로 지급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IRP 계좌는 이직, 퇴사 등의 이유로 은퇴 전 발생한 퇴직금을 담아 놓는 퇴직연금 전용 계좌입니다. 회사는 근로자의 IRP 계좌에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며, 근로자는 IRP 계좌에 입금된 퇴직금을 특수한 상황(파산, 천재지변 등)을 제외하고는 중도인출하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한 것일까요? 바로 퇴직금을 꺼내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막고, 은퇴 이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은퇴 이전에 퇴직금이 사용되는 것을 막고, IRP 계좌에서도 계속 금융 상품에 투자하여 퇴직연금의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꽤 많은 사람들이 퇴직금을 받아 Flex(?)를 하거나 생활비로 사용한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퇴직연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까지 언급한 퇴직연금 제도의 장점 4가지를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퇴직금을 회사가 아닌 제삼자(금융기관)에게 맡긴다.
2. 제삼자가 맡은 퇴직금을 운용 주체가 금융상품에 투자 및 운용하여 수익을 창출한다.
3. 퇴직금이 은퇴 전, 소모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한다.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 401(k)
미국 주식시장은 한국 주식시장과는 다르게 꾸준히 우상향합니다.
퇴직연금을 통해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인 401(k)가 있습니다. 이름이 참 특이한 퇴직연금이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401(k)의 이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1875년 American Express 社가 American Express Company Plan라는 이름의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봅니다. 시간이 흘러 다른 기업들도 퇴직연금 제도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하며 기업이 근로자의 퇴직연금을 운용 및 책임지는 것이 보편화되었죠. 1970년대, 오일 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며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기업이 운영하던 근로자의 퇴직연금 또한 기업의 도산으로 인해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이렇듯 퇴직연금을 운영하던 기업의 도산과 근로자의 불안한 노후는 본격적인 미국 퇴직연금 제도의 시작을 알리게 되죠.
1974년, 미국 정부는 근로자의 퇴직연금을 보호하기 위해 근로자퇴직소득보장법인 ERISA 법(the 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 of 1974)을 도입, 근로자의 퇴직금 지급을 보증하는 연금지급보증공사(PBGC) 등의 연방기관을 설치함과 동시에 회사가 아닌 제3의 기관(퇴직연금 기관)이 자산을 운용하거나 투자운용사에 맡기도록 하였습니다. ERISA 법을 제정하여 현재 퇴직연금 제도의 틀을 만든 것이죠. 거기에 더해 1981년, 내국세입법(Internal Revenue Code)을 통해 근로자와 회사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에 적립한 부담금에 대해 각각 소득공제와 법인세 공제를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내국세입법 제401조 K항에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제도를 401(k)라고 명칭하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 오바마 정부 시절, 연금보호법(Pension Protection Act)을 제정합니다. 연금보호법은 ① 근로자가 401(k)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401(k)에 자동가입하도록 하고, ② 근로자가 별다른 운용지시를 하지 않으면 회사가 제공하는 금융상품으로 자동투자되도록 합니다.(디폴트옵션) 요약해보면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는 근로자의 퇴직금을 보호함과 동시에 금융상품에 투자하여 퇴직연금의 규모를 키우는 것에 집중한다고 볼 수 있죠.
지금까지 설명한 401(k)를 통해 근로자의 퇴직 연금이 운용되는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401(k)에 가입한 근로자는 자신의 급여 일부를 매월 401(k)에 적립하며, 회사 또한 일정 금액을 적립해 줍니다. 적립한 금액에 대해서 근로자는 소득공제를, 회사는 법인세 공제를 받게 되죠. 근로자가 퇴직연금에 관심이 없고 금융상품에 잘 모르더라도 401(k)에 자동으로 가입되며, 회사가 제공하는 금융상품(주식, 채권, 펀드 등)에 자동으로 끊임없이 투자되고 미국 주식시장은 끊임없이 우상향하며 근로자가 적립한 퇴직연금의 규모를 더욱 키워줍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근로자가 퇴직할 시점이 되면 금융상품에 투자된 연금은 엄청난 규모로 커져 근로자에게 돌아갑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잘 정비된 401(k) 덕분에 미국에서 연금 백만장자의 수는 계속 늘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퇴직연금 제도가 필요한 이유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퇴직연금 제도인 미국의 401(k)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다음 문서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퇴직연금의 종류(확정기여형 등)와 더불어 세부적인 옵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한 문서로 모두 설명하려다가 분량 조절로 실패하여 다음 문서로 넘어갑니다. 다음 문서가 훨씬 중요하니 꼭 읽어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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